A Conversation with the Guy Who Created The Bear
https://www.esquire.com/entertainment/tv/a40681092/the-bear-creator-christopher-storer-interview/
What Inspired 'The Bear'? The Show's Creator Explains It All
Christopher Storer gives the backstory of the show of the summer—and what you might expect from Season Two.
www.esquire.com
*의역 및 오역 다수
- ESQUIRE: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처음에 더 베어를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지난 몇 년간 셰프와 관련된 형편없는 영화들을 수없이 참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내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게 되었고 그 즉시 이 쇼가 많은 것들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CHRISTOPHER STORER: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만약 당신이 제대로 그려내지 않는 쇼들을 볼 때 “이거 완전 엉터리네.” 하는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제대로 묘사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쇼를 영화로써 쓰고 있다가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매 순간마다 몇몇 셰프로부터 “그렇게 쓰지 마. 진짜 별로야.”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 결국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줘야 했다. 단순히 기술의 수준뿐만 아니라 어려운 하나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레스토랑 일은 시작부터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건 불가능해. 언제 무너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당신은 천재고 이 분야의 최고지만, 이곳은 여전히 삐걱거리는데다 곧 망할 것처럼 느껴져.” 이런 생각이 든다. 수십 년간 운영을 해왔다는 식당을 볼 때마다 대체 어떻게 해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더 베어는 급여, 세금, 문서 작업, 위생, 배관, 설거지, 방유판, 더러운 마루바닥, 위생 점검에 대해서도 실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일들이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현실을 보여준다. 식당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더 베어에서는 그런 본질적인 디테일들이 드라마의 핵심이 되어준다.
맞다. 어떤 쇼의 개발 단계에 있든지, 어떤 이유든지 간에 사람들이 돈에 대해 언급하기 굉장히 꺼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 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상당히 중요하고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고 꾸준히 말해왔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서는, 재정이 어떻게 파문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서는 이 쇼를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정말로 많은 셰프들이 “그래 맞아, 오픈 당일 밤에 변기가 터졌어.” 라고 하거나 싱크대든 뭐든 간에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요리? 그건 가게를 운영하기 위한 필요한 수많은 기술 중 하나일 뿐이다.
- 쇼 내에서 시카고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닌 그 자체의 국가(nation state)처럼 느껴진다. “더 비프 바깥 도로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이 점이 궁금했다.
더 비프에 영감을 준 레스토랑 Mr. Beef의 주인을 알고 있다. 크리스 주케로. 그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친구였다. 미스터 비프는 올리언스의 구석진 곳에 위치하는데, 시카고의 아름다운 동네 리버 노스의 이리(Erie)와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미스터 비프와 관련해서 재밌다고 느꼈던 건 여기엔 거대한 주차 공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도심 내의 엄청난 그 공간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곳에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크리스와 어울리며 미스터 비프의 고급스러운 식사룸이라고 불리는 곳에서-실제로는 그저 여분의 안뜰일 뿐이지만- 쇼의 많은 부분을 썼다. 이 독특한 장소에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해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심지어 그곳엔 “비록 바깥 세상은 2022년일지 몰라도, 여기는 여전히 1988년이다.”라고 쓰여진 낙서도 있다. 게다가 재밌었던 점은, 나는 여기서 언제나 같은 그룹의 사람들이 어울리며 노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들은 정말로 매력적이었지만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크리스는 그들에게 “얘들아, 너네가 여기서 노는 건 괜찮은데 제발 담배는 좀 다른 곳에서 피든가 해. 여기서도 그 망할 냄새를 맡게 되잖아.” 하고 말했다. 이런 재밌는 디테일들을 리치란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 더 베어에서 시간은 지속되는 불안의 근원이다.
내가 수많은 셰프들에게서 발견한 또다른 공통점은 레스토랑 일이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아가는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많은 요리사들이 “밖에 나가게 되면 지금이 몇 시인지,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내 사생활은 난장판이다. 그렇지만 레스토랑 내에 있을 때면 나는 시간에 엄청나게 사로잡히곤 했다.” 고 했다. 그리고 이건 이 쇼의 주제가 됐다. 요리사들과 설거지 담당자들은 언제나 그런 압박 속에 있어 레스토랑 밖의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자신들이 놓치고 있는 삶에 대해 알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 지난 몇 년간 레스토랑 내의 유해한 업무 환경에 대한 수많은 보도들이 나왔다. 우리의 바람이 그런 환경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더 베어는 심지어 “선한” 사람들조차-시드니와 카미처럼 사려가 깊고 선의를 지닌 캐릭터들-지속적인 압박으로 인해 미치기 직전까지 몰릴 수 있고, 결국 이성의 끈을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장 과정에서 내 가정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내게는 가족과 관련된 정신 질환과 중독이 있었다. 지금도 Al-Anon 모임에 꾸준히 다니고 있다. 나는 성인이 되고서도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해결하기 위한 건강한 방법들을 찾는 중이다. 내가 가족에 대해 느끼는 어떤 생각들은 많은 유해한 업무 환경에서 느끼는 생각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군가 엉망진창인 일터를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주방에 있다 보면 그건 아마도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혹사당했거나, 이전에 그렇게 배웠다거나, 해결이 되지 않는 일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카미는 이런 비슷한 환경의 주방들을 이전에 본 적이 있고 유해한 업무 환경을 경험했던 적이 있으며, 자신은 이런 일들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처음부터 이 식당을 잘못된 이유로 고치려고 한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본질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드니가 들어오게 되면서-무언가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낙관적인 희망을 지닌 채 들어오지만 결국 이곳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수렁에 빠지게 된다- 중독이라는 질환과 가족 내에 흐르는 유해함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 더 베어의 캐릭터들은, 심지어 혐오감을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나를 이 쇼에 매료시키게 만든다. 에번 모스 배크랙이 연기한 리치를 예로 들자면, 정말 매력적인 동시에 정말 불쾌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카미의 형이었던 마이클의 자살로 슬퍼하지만, 그 슬픔의 과정은 마찬가지로 두려우면서도 곰처럼(bearlike) 느껴지곤 한다.
이 쇼의 작업을 시작하기 얼마 전 내 친구 중 하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우리가 정말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일 이후 친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데 다들 그에게 이런저런 비밀이 있었고,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리치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리치가 정말로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나? 그는 카미에게 소리치는 방식을 통해 슬퍼하고 있다. 그는 이 어린 녀석을 통해 마이클에게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불쾌한 방식이고, 그는 끔찍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리치는 아주 큰 고통 속에 있다. 그는 문제를 유치하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자신이 총을 갖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에번이 이를 시작부터 정말 훌륭하게 해 주었다. 이것이 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안다.
- 그건 쇼 전체에도 해당된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들었던 것 중 기억하는 한 가지 멋진 구절 중 하나는 “in medias res(이야기의 초반을 생략하고 중간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로, 행동하는 도중에 아주 갑작스럽게, 심지어 혼란스러운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베어 캐릭터들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데, 이와는 반대로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거의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의 광란에 그저 떠밀리게 된다.
100% 의도된 것이다. 식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당신은 그저 그 안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 한번은 셰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위태로운 상황이 닥치자 “이건 내가 이제껏 봤던 일들 중 제일 정신나간 짓거리야.” 하는 생각이 들게 됐던 이틀간에 대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브런치 서비스 시간대에 일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지옥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또한 카미의 고군분투와 그의 사고방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 친구를 잃었을 때, 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이를 외면했다. “그래, 이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나는 해야 할 수많은 일들 때문에 바쁘니까.” 내 생각에 카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매티 매더슨은 이런 흥미로운 말을 했다. “당신은 여기를 잠수함처럼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다 같이 잠수함에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는데, 그들 모두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당신이 건드리길 원치 않는다.” 누구든지 이렇게나 시끄럽고 뜨거운 좁은 복도 속에서 다 같이 뭉친 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다면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이건 괜찮지 않고, 긴장감이 그렇게 빠르게 달아오르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 마치 Das Boot 같다. (특전 유보트, 1981년 제작된 잠수함 관련 영화)
이봐, 우리는 Das Boot와 Crimson Tide(1991년 제작된 토니 스콧의 액션 스릴러)를 정말 많이 봤다.
- 우리가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주제를 얘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일반적으로 꿈과 관련된 시퀀스들을 질색한다고 말해야만 하겠다.
나도 싫어한다. 그렇다. 나도 싫어한다.
- 그렇지만 더 베어에는 아주 근사한 꿈과 관련된 시퀀스들이 있다. 특히 카미의 신경줄을 긁는 장면은 거의 나인 인치 네일스의 비디오 같이 느껴진다. 정말로 현실적이고 불안한 꿈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렇게 제대로 된 꿈 시퀀스를 만들게 되었나?
우선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시달리고 있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나는 언제나 끔찍한 불안증과 공황을 겪고 있다. 이는 카미에게 그저 평상시의 하루일 뿐이다. 많은 요리사들이 그렇듯 카미의 삶은 건강하지 않기에 일터에서 잠이 들곤 한다. 또한 그는 섬뜩한 생각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공황 발작을 겪은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 다른 모든 사람들의 행동의 잔상이 날카롭게 떠오르곤 한다. 당신은 그저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씩 차례대로 쌓아가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때로는 차분한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를 진정시켜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카미는 그가 과거에 만들었던 요리들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최고의 셰프가 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놓쳐버린 인생에 대한 생각도 떠오르게 된다. 여기에는 깊은 후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 당신의 인생에 토대가 되었거나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요리가 무엇인가?
그건 쇼에 나와있다. 브라촐레. 누나와 나는 자라면서-우리 가족은- 많은 기능 장애를 겪었고,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누나는 한동안 어머니와 살았고 나는 한동안 아버지와 살았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소원함이 있었다. 그리고 음식은 우리를 예전처럼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브라촐레는 일요일에 언제나 가족끼리 먹는 음식이었다. 가족이 함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Sunday gravy(토마토 페이스트, 다양한 고기 등을 넣어 만든 가정식 요리)였다. 거기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내 생각에 그건 잡담을 하면서 부엌에서 6시간씩이나 있었던 덕분인 것 같다.
*sister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다가 누나라고 번역했습니다...
- 유명한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는 쇼에서 보이지 않는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 쇼에는 창의성과 관련해서 흐르는 기류가 존재한다. 이는 시드니와 키미가 우정을 발전시키게 되는 큰 이유가 된다. 카미는 소통을 하는 데 있어 아주 형편없고, 시드니는 소통을 지나치게 많이 하기에 그들의 중간 지대가 바로 이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노마는 지향점이 되어준다. 젊은 요리사로서 이제 막 시작을 하는 이들에게 노마와 같은 곳은 지향점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닐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일찍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내가 충분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오직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이런 노마는 시드니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 리오넬 보이스가 연기한 파티시에 마커스의 캐릭터도 그렇다. 우리는 마커스가 노마에서 나온 발효와 관련된 책을 훑어보며 그의 주방에 코펜하겐의 제빵사 리차드 하트의 사진을 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절친한 친구 중 하나인 리오넬은 이에 대해 진심으로 더 배우고 싶어했다. 그는 코펜하겐에 가서 리차드 하트와 함께 연습했고 제빵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노마에도 갔었다.
- 당신이 쇼의 제작자인만큼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 제발 마커스를 보호해 달라! 나는 그 캐릭터를 정말 좋아하고 그가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큰 꿈을 지니고 있다.
주방에 있으면서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또 다른 사실은 그러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열중하는 요리사나 사람이 언제나 한 명쯤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마커스가 대체 왜 망할 그 도넛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하는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을 검색하면서 얼마나 많이 봤는지 말도 못 할 정도다.
- 마커스는 창의적이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대단한 상황 속에 있다는 점에서, 한동안 노마의 파티시에였던 말콤 리빙스턴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말콤이 마커스의 캐릭터에 영감을 주긴 했다.
- 그리고 이 모든 가운데 보는 순간 깊은 인상을 주는 제레미 앨런 화이트의 카미가 있는데, 그는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레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 그는 여기를 살리고 싶은 동시에 파괴하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생각이 들게 하는 정말 아름다운 연기를 해주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조만간 나쁜 일 역시 일어나게 되는 이런 곳에서는 예전의 중독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에피소드 7화의 그 주문들은 카미로 하여금 “그래, 결국 이렇게 됐네. 다들 지옥에 있잖아. 그리고 이제 나는 또다시 이걸 다 날려버려야겠군.” 라고 말하게 해 줄 완벽한 기회였다.
- (스포일러 주의) 에피소드 7화는 평론가들의 극찬이 현명하지 못했던 to-go 주문의 시작과 같은 날로 겹치면서 근본적으로 레스토랑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 내가 겪었던 경험에 의하면 그런 파급효과는 사실적이다. 허드슨 밸리에 있는 mom-and-pop 가게가 생각이 나는데, 작은 사업체였던 곳에서 내가 그 가게의 바질 페스토에 관해 뉴욕 타임스에 쓴 이후 주문이 수천 수만배 가까이 폭등했던 적이 있었다.
판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Carbone(뉴욕의 미슐랭 레스토랑을 말하는 듯)은 처음으로 To-go 서비스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사전 주문을 꺼놓지 않는 바람에 5시에 오픈했을 때 완전 난장판이 됐던 얘기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흥미롭다. 왜냐하면 당신은 “결국엔 좋은 일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가게를 침몰시킬 것이다.
- 그럼에도, 더 베어 첫 시즌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라디오헤드의 “Let Down”에 의해 고조되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있다. 갑작스럽게 식당을 바꾸는 일이 기회처럼 느껴진다. 시즌2의 컨펌이 났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식당이 바뀐다고 해서 기존의 매력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시즌2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보다는 -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더 수월하게 할 방법은? 그리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엉망이지 않은 상태로 시작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헛수고를 하거나 아무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대신 나는 이 주방에서 가족 공동체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망할 선반 위에 소고기 육수를 놔두는 사람들이 있는 이런 어리석은 시스템 속에서 결국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과연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